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 (문단 편집) == 이후 ==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병합된 이후 수천 명의 리투아니아인 지식인은 시베리아로 유형당하거나 처형당했으며 강제적인 집단화가 진행된다. 이런 강압적인 소련의 지배에 불만을 가진 많은 리투아니아인들은 나치 독일의 점령을 환영하고 나치 점령 초기에는 많은 이들이 나치에 부역했다. 나중에는 나치들이 소련놈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놈들이란 걸 깨닫게 되지만 이런 소련에 대한 악감정 때문인지 발트 3국 지역에서는 전체적으로 나치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을 가진 이들이 간간히 보인다. 게다가 리투아니아는 규범에 바탕한 [[망명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콘스탄틴 패츠|대통령이]] 총리에게 비상대권을 위임했으니, [[https://en.wikipedia.org/wiki/National_Committee_of_the_Republic_of_Estonia|내각]]을 구성한 국무위원 및 군부의 절반이 [[잠수#s-2|시골로 탈출해]] 국내외에서 투쟁하는 [[https://en.wikipedia.org/wiki/Estonian_government-in-exile|에스토니아 망명정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한 [[내각책임제]])로 전환했다. 에스토니아 망명정부는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순망치한|북유럽 나라들의 군사원조를 바탕으로]] 온나라의 곳곳에서 [[민병대|의용군]]과 [[예비군]]을 싹쓸이로 총동원해 10만 명의 독립군을 창설하면서 격렬하게 저항하는 업적을 남겼지만, [[백만대군]]을 투입한 [[소련군]]과 [[NKVD]]의 토벌전으로 마침내 [[전멸]]하고, 살아남은 관료들은 [[핀란드]]와 [[스웨덴]]을 경유하면서 [[덴마크]]와 [[노르웨이]]로 탈출했다. 라트비아 정부는 [[카를리스 울마니스]] 대통령이 참석한 국무회의의 [[https://en.wikipedia.org/wiki/Soviet_occupation_of_Latvia_in_1940#1940%E2%80%931941:_The_first_Soviet_occupation|결정]]으로 라트비아 [[외교공관]]들을 [[https://en.wikipedia.org/wiki/Latvian_diplomatic_service_in_exile|라트비아 외교단]](외교관들의 정무위원회)으로 개편했으며, 그들에게 비상대권을 위임했기 때문에[[https://en.wikipedia.org/wiki/K%C4%81rlis_Reinholds_Zari%C5%86%C5%A1|#]] 망명정부를 굳이 세울 필요가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안타나스 스메토나]]가 그냥 [[빤스런]]하여 정부조직의 [[공중분해]]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리투아니아 정부 관청들은 순식간에 마비됐는데, 리투아니아 군부가 질서를 유지하면서 소련군을 환영했다.] 그래서 리투아니아 외교공관들은 매우 큰 혼란을 겪었으며, 일부는 나치 독일과 결탁하여 [[https://en.wikipedia.org/wiki/June_Uprising_in_Lithuania|6월 봉기]]를 일으키고 [[https://en.wikipedia.org/wiki/Provisional_Government_of_Lithuania|친독 임시정부]]를 세워 홀로코스트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예: [[https://en.wikipedia.org/wiki/Lithuanian_Activist_Front|리투아니아인 활동가전선]]).[* 해외에서 머무르는 리투아니아 외교관들과 사전 교섭이 전혀 없었고, [[독일 국방군]]의 침공에 호응해 [[카우나스]]와 [[빌뉴스]]에서 봉기에 성공한 [[유격대]]들이 [[군정권]]을 휘두르는 군정부(軍政府)였기 때문에 규범에 바탕한 망명정부가 아니었으며, [[연합국]]과 [[추축국]]은 그들을 [[마적]]이나 [[군벌]]로 취급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야 [[소련군]]에서 탈영한 리투아니아군 장교들이 외세([[미국]]과 [[영국]]과 [[프랑스]] 및 [[스웨덴]])의 원조를 바탕으로 [[https://en.wikipedia.org/wiki/Union_of_Lithuanian_Freedom_Fighters|군사정권]]을 수립하면서 10년간 항전하다가 전멸하고 말았다.[* [[남부군|대단히 불리한 형편에서 유격전을 벌였기 때문에]] 거점을 자주 옮기면서 [[군령권]]을 휘두르는 [[사단(군대)|완편사단급]]의 전투사령부로 발족했는데, [[참의부]]처럼 서유럽에 파견한 특사들이 리투아니아 외교관들과 가까스로 접촉에 성공해 그들의 [[추인]](군사정권의 우두머리=[[대통령 권한대행]])을 얻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